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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이민

영알못 천만원으로 혈혈단신 뉴질랜드 이민 시작(1)

2015년 8월, 말복더위에 혈혈단신으로 뉴질랜드 이민길에 올랐다. 통장엔 고작 천만원이 있었다. 당시 살던 오피스텔 월세 보증금이었는데, 용돈을 받으며 대학생활을 하던 나에겐 큰 돈이라 천만원으로 연고가 전혀 없는 나라에 정착해 천년만년 살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당시 생각했던 천만원의 용도는 이랬다. (환율 750원 기준, $13000 NZD)

용도 예산
집 구하기(쉐어룸, 24주분) $3600
영어학원 등록(3.5개월) $3750
식비 및 용돈 $2400
워홀비자비용(비자신청비, 건강검진) $600
$10,350

쉐어룸 방값이 주당 150불이라는 블로그 말만 믿고, 주당 식비와 용돈 100불이면 사치스럽게 산다던 다음카페의 글 하나만 믿고 세운 현실성 없는 계획. 관광비자 3개월이 끝나면 영어학원을 등록하고, 학원을 다니는 동안 20시간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약 7개월 뒤 접수를 시작하는 워홀비자를 신청 할 계획이었다. 20시간 아르바이트를 하면 당시 최저임금이 $14.75(약 11000원)이었고 20시간을 다 채워 일하면 $295불을 벌 수 있었으므로, 방값과 생활비를 합쳐 250불을 내더라도 무려 "45불"이 남는다고 생각했다. 인천에서 홍콩, 홍콩에서 뉴질랜드로 경유를 거쳐 오는 17시간 30분동안 얼마나 아름다운 꿈을 꿨었는지.

 

뉴질랜드 입국 후 살았던 홉슨 스트릿(Hobson Street, Auckland)의 아파트


그러나 현실은,

 

현실은 가혹했다. 외국인들과 어울려 집을 쉐어하고 살거라던 계획은 영어를 글로만 배운 당시의 나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쩔수 없이 한인플랫에 입주했는데, 1930년대에 지은 건물로 창문 너머로 옆 건물의 교실이 보이고 창문을 닫아도 수업소리가 들렸으며, 바깥보다 집 안이 더 추웠다. 영알못으로 영어권 국가에 떨어진 죄로 핸드폰 심카드를 사는것도 손짓발짓을 해가며 진땀을 빼야했고, 요금제 설명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으며 버스를 타는것조차 고역이었다. 한국 체크카드는 뉴질랜드에서 신용카드(크레딧)로 인식되어서 작은 매장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고 최대 3.5%의 추가요금을 내야 했다. 현지 통장을 개설하기위해 한인 직원이 있다는곳을 물어물어 찾아갔는데 한 곳은 다음 예약을 3주 뒤에나 잡을 수 있었고, 다른 한 곳은 겨우 2세에 이민 온, 내 영어보다 직원의 한국어 실력이 떨어지는 웃픈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영어를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한국에서 미국식 영어만 배워온 나는 같은 단어라도 뉴질랜드식 영어는 알아 들을 수 없었는데, 예를 들어 Card는 한국에서 미국식으로 [카아알드]라고 배웠지만 뉴질랜드에서는 [카아드]로 <R>을 발음하지 않았다. 나는 마트 무인계산대에 가면 나오는 <Insert your card>라는 문장을 알아듣는데 3주가 넘게 걸렸다. 계산을 하다 오류가 나면 무인계산대에 사이렌 불빛이 번쩍거리는데 그때만큼 무서운 순간이 없었다. 무슨 문제인지 설명해야했는데 나는 그 정도의 영어를 구사할 수 없었으므로.. 무인계산대는 오류가 잦았지만 영어가 안되니까 (계산대에 가면 의레적으로 하는 인사가 너무 무서웠다) 점원을 통해 계산을 할 수는 없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오랫동안 이용했던 기억이 있다.

 

이민 초창기에 가장 많이 이용했던 Countdown. 한국으로 치자면 이마트같은 느낌.


용도 최초 예산 현실
집 구하기(쉐어룸, 24주분) $3600 $4100
영어학원 등록(3.5개월, 학생보험료 포함) $3750 $4000
식비 및 용돈 $2400 $3000
워홀비자비용(비자신청비, 건강검진) $600 $1200
$10,350 $12,300

최대한 저렴한 집을 찾고 가까운 학원에 다니면서 약 10%정도 오른 비용으로 의식주와 학업을 해결했지만, 어학원을 다니면서 직장을 찾기란 영알못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영어를 전혀 못해도 할 수 있는 일은 스시가게, 카페 주방보조(설거지), 학교청소 정도인데 학교청소는 연락을 해봤지만 최저임금에 훨씬 미달인 시간당 $10을 지급하되 첫 2주는 무급으로 트라이얼(인턴과 비슷함)을 해야 한다고 했다*. 스시가게는 $12를 제시했지만 영업시간이 어학원 수업시간과 같아서 탈락. 카페 주방보조는 남자만 뽑겠다고 해서 나는 장장 7개월간 일을 구할 수 없었다.

*무급 트라이얼과 최저임금 미만을 지급하는것은 불법이며 당국에 적발되면 업주만 처벌을 받는다. 

 

카운트다운에서 구매한 1불짜리 식빵과 2불 스파게티 면과 2불 토마토 소스로 끼니를 해결하며 7개월을 버티고 당시 1년에 200명으로 인원제한이 있던 워홀 쿼터에 들었다. 하지만 나는 불규칙하고 영양가 없는 식생활을 지속한 결과로 피부염이 생겨 건강검진 비용 $190에 피부염 치료비용을 더해 $1000불을 지출 한 이후에야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