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글로 배웠다는것은 <알파벳만 알아요>와는 다르다. 나는 12년의 초중고 교육과정동안 영어를 배워왔고, 수능에도 영어과목이 있었으며 심지어 꽤 잘봤다. 대학에 입학해서도 영어 교양수업을 들었고 졸업전 800점 이상의 토익점수도 무사히 제출했는데, 왜 뉴질랜드에 와서는 벙어리가 됐을까? 영어를 문자가 아닌 언어로 사용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어학원을 찾아갔다.
어학원 등록은 1)학원에 직접 찾아가기 혹은 2)유학원을 통하기 로만 가능하다. 유학원은 보통 4주이상 혹은 8주이상의 코스로 등록을 유도하기때문에 초단기로 수업을 듣고싶은 경우에는 학원을 찾아가면 된다. 일반상식과는 다르게 오히려 유학원을 통하는 편이 등록비가 싸다. 나는 집에서 가까운 세 곳의 학원을 직접 방문했는데, 적게는 주당 50불, 많게는 주당 80불이상 직접 등록이 더 비쌌다. 유학원에 커미션을 지급하는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이런 구조가 나올 수 있는지는 아직까지 의문.
관광비자로도 뉴질랜드에서 짧은기간 공부를 할 수 있지만, 나는 관광비자의 만료가 다가왔고 주 20시간 일을 할 계획이었으므로 유학원을 통해 학생비자를 신청했다. 학생비자를 신청하면 방학때는 풀타임(30시간 이상)으로 일을 할 수 있고, 학기중에는 최대 20시간 일을 할 수 있다. 모든 학생비자에 해당되는것은 아니며 뉴질랜드 교육청에 등록된 교육기관만 가능하니 등록 전에 일을 할 수 있는 어학원인지 반드시 확인을 해야 한다.
학생비자는 간단한 양식의 서류를 채우고, 입학허가서, 잔고증명, 귀국 비행기표(혹은 비행기 표를 구매할 금액을 추가로 증명) 등을 제출하면 된다. 사실상 돈만 내면 나오는 비자인데 전과기록이 있다면 거부될 수 있다고 한다. 유학원에서 나에게 전과가 있냐고 물으면서, 특히 전과기록 중에서도 중범죄가 있는 경우에는 희망이 없다고 했다.
한국에서 관대하게 다뤄지는 음주운전은 뉴질랜드에서 중범죄로 인식되므로 혹여 뉴질랜드 이민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절대 음주운전을 해서는 안되겠다. 여담이지만, 현지에서 만난 친구가 스무살때 음주운전을 해서 적발이 됐는데 범죄기록이 남아있어서 외국에 나갈때 입국신고서에 음주운전으로 처벌된 경력이 있음을 써야했고 세관에서 늘 짐 검사를 당했다고 한다. 기록을 안쓰면 되지 않나? 라고 생각 할 수 있겠지만 입국신고서는 공식 서류이므로 위조하거나 거짓으로 기재하면 후일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2015년 11월 초, 학생비자가 승인되어 공식적인 학생이 됐다. 입학 전 레벨테스트가 있었는데 읽기, 듣기, 쓰기의 세 과목으로 영어실력을 평가해서 반 배정을 하는게 목적이었다. 읽기와 듣기는 그럭저럭 넘겼는데 <자기소개를 해 보세요>라는 주제로 B4 한장을 가득 채우기에는 영어실력이 일천했다. 의지의 한국인은 교육받은대로 최대한 머리를 쥐어 짜내고 말을 늘려 종이를 채우려 했지만 내 이름, 생년월일, 가족소개, 고향 등.. 나 자신을 소개하는것 대신 신상명부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반은 <Intermidiate>으로 배정되었다. 대충 반 갯수가 5개라고 했을때 중간쯤 되는 학생을 모아둔 반이었다. 학생들의 국적은 중국, 남미, 베트남, 한국. -한국인은 나를 포함해서 두 명이었는데, 우리는 학원 내에서는 무조건 영어를 사용하기로 했고 첫 날의 약속을 졸업하는 날 까지 지켰다-
수업은 돈이 아까울 정도로 간단했다. 교재를 복사한 종이를 나눠주고 문제를 풀거나 선생님의 사담을 듣거나 하는 방식이라 내가 이 돈을 내고 왜 여기 앉아있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내가 다닌 어학원만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선생님이 자주 바뀌었는데, 바뀔때마다 수업방식도 확 바뀌어서 수업 난이도가 널뛰었다. 어느날은 <아이 엠 어 보이, 유 알 어 걸> 수준이었다가 어느날엔 라디오를 켜주고 들리는 단어를 받아쓰는 고급영어수업으로 바뀌는 정도. 물론 우리의 종이는 깨끗했고 선생님은 머쓱하게 '그래, 라디오는 원어민을 위한 거야'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영어 구사력은 일취월장 했는데 이유는 오직 외로움 때문이다. 타지생활의 외로움을 떨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영어로 다양한 국적의 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야만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거지?' 싶은 생각이 들더라도 어떤것이라도 입에서 꺼내야 했다. 학생들은 각자 자기 나라의 언어로 친구의 이름을 써주면서 가까워졌고, 수요일이면 펍에 모여서 함께 맥주를 마시고 취중에 유창한 영어실력을 뽐내고 다음날이면 다시 하향평준화되는 기적을 경험했다. 4주마다 레벨테스트를 보면서 반을 이동했기때문에 새로 구성된 반에서 만난 친구들과 또 상기의 과정을 거치며 영어를 문자가 아닌 언어로 체득하게 되었다.
정말 시험지를 채점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매달 상급반으로 옮겨갔고 마지막 1.5개월을 남겨두고 일반영어 수업이 아닌 아이엘츠 수업을 듣게 됐다.
아이엘츠 반으로 옮겨 수업을 들었지만, 당시에는 시험을 볼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수업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었다면 시험을 한 번은 볼 생각을 했겠지만, 시험료가 회당 $395불으로 한화 30만원이 넘어서 가져온 예산을 쪼개사는 고학생으로서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금액이었다. 같은 반 친구들은 뉴질랜드에서 대학과정을 입학하려고 시험준비를 하는 학생들이어서 이 수업에서 영어가 가장 크게 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수업을 마지막으로 어학원 생활은 끝났다.
그리고 나는 2019년에 아이엘츠 시험을 봐야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 수업에서 얻은 자료들을 허공에 날린것을 후회하면서 말이다.
'뉴질랜드 이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뉴질랜드 이민 : 2021 뉴질랜드 한정판 영주권, 웨비나를 통한 추가정보 (0) | 2021.10.02 |
---|---|
뉴질랜드 이민 : 뉴질랜드 이민법 변경! 2021년 뉴질랜드 이민비자 (0) | 2021.09.30 |
영알못 천만원으로 혈혈단신 뉴질랜드 이민 시작(1) (0) | 2021.09.26 |